20150208

그들은 너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칼럼니스트 Alan Cohen2002년도 웹 게시물을 발췌, 번역.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 이야기입니다. (부르키나파소다가바족이라는 이 있음)
한 여인이 아기를 배게 되면,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몇 명의 친구 여인들과 함께 황야로 나가서 태어날 아기의 노래(영혼과 교감하는 노래)가 들릴 때까지 기도와 명상의 시간을 가집니다. 모든 영혼은 각각 자신만의 울림을 갖고 있으며, 독특한 향기와 목적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여인들의 노래가 서로간에 화음이 맞기 시작하면 다 함께 크게 한 번 부른 다음 마을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아기가 태어난 후에는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아기에게 이 노래를 들려줍니다. 이후 아이가 자라 학교에 다니기 시작할 때도 모여서 불러 주며, 아이가 성인식을 치르고 나서도 다시 한 번 모여서 불러줍니다. 그가 결혼을 할 때도 이 노래를 듣게 되며, 임종을 맞을 때에도 가족과 친구들이 그 자리에 모여서 (태어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같은 노래를 불러서 다음 세상으로 그를 배웅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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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족에서 '영혼의 노래'를 부르는 다른 한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삶의 어느 시점에서 그가 죄를 짓거나 도리를 벗어난 행동을 하면 그를 마을 한가운데로 불러내고 주민들이 그를 둥글게 둘러쌉니다. 그리고 그에게 주어졌던 영혼의 노래를 불러줍니다. 반사회적인 행동을 교정해 주는 것은 벌이 아니라 사랑이며, 각자의 정체성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주민들은 알고 있습니다. 귀에 익은 자신의 노래가 들릴 때 타인을 해치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게 됩니다.

친구란 당신의 노래를 알고 있으며, 당신이 잊었을 때 그 노래를 당신에게 불러주는 사람입니다. 당신을 사랑한다면 당신이 저질렀던 실수나 이로 인해 자책하는 것으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당신 스스로가 추악한 사람처럼 느껴질 때 당신의 아름다움을, 깨어진 당신의 모습에서 온전함을, 죄책감을 느낄 때 당신의 선함을, 방향을 잃었을 때 삶의 목적을 상기시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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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사회에 사는 우리들의 삶에서도 연관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비슷한 파장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을 삶에 끌어들이며, 각자의 노래가 크게 울려퍼지도록 함께 노래를 불러줍니다. 때로는 우리의 노래가 세상으로 퍼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우리를 돕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노래를 부를 수 있기 위해 보다 더 큰 용기를 기르도록 우리를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프리카의 그 부족과 같이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는 이웃의 틈에서 자라지 않았을지라도, 자신의 현재 삶이 자신의 노래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아닌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을 수도 있지만, 위대한 '가수들'(삶의 뚜렷한 방향을 찾은 사람들) 또한 그랬었습니다. 멈추지 않고 노래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될 것입니다.